1853-1879
1853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고흐는 16살에 당시 네덜란드에서 영향력 있는 갤러리를 운영하던 큰아버지 밑에서 일을 하였고 미술에 대한 지식을 습득했다. 그러나 고객관리 무능을 이유로 그는 해고되었고 시간이 지나 스스로를 만회하고 싶다며 아버지처럼 목사의 길을 선택한다. 이후 목사 시험마저 떨어지자 그의 아버지는 벨기에 작은 마을에 있는 성직자 조수로 일하게 해주었지만 여기서도 고흐는 파면되고 만다.
이처럼 순탄치 못한 청년시절을 보내며 절망에 빠져있던 고흐에게 자신과는 다르게 큰아버지 밑에서 성공적으로 일하던 동생 테오가 찾아와 예술가의 길을 조언해주었고 이는 예술가 반 고흐의 시작점이 되었다.
1880-1887
고흐는 동생의 조언을 받아들여 홀로 그림을 그렸고 그의 첫 걸작인 '감자먹는 사람들' 을 그렸다.
그러나 이 시기 고흐는 교회에 대한 반대입장을 계속해서 내비쳤고 이는 목사였던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관계에 악영향을 끼쳤다. 이후 아버지가 갑작스레 사망하자 가족들은 고흐를 비난했고 고흐는 충격을 먹고 남동생 테오가 있는 파리로 거취를 옮긴다.
파리에서 있던 1년중 고흐는 여름에 전시된 일본 그림 전시회에서 일본 특유의 그림들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를 따라 하듯 그의 작품은 색채가 밝아지고 일본풍의 느낌을 띄게 된다.
이 시기 고흐는 동생 테오가 가진 미술계의 영향력과 연결돼 날이 갈수록 주목받지만 그 영향일까. 예술가들의 문란한 생활이 계속되며 건강이 나빠진다. 이에 고흐는 돌연 남동생에게 작별을 선언하고 프랑스 남부지방으로 떠난다.
1888-1889
프랑스 남부 아를에 도착한 고흐는 네덜란드, 파리 시절과 일본 화풍을 연구하며 그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갔다. 이때 '옐로 하우스' 란 아틀리에를 마련, 근방의 화가들을 초청하지만 '고갱' 만이 이 초대에 응해 아를로 이주한다. 처음엔 좋았으나 이후 계속되는 경쟁과 다툼으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고흐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되고 몇 주 후 퇴원하여 옐로우 하우스에 복귀하지만 이웃들의 압박에 결국 생 레미 지역에 있는 정신병원에 스스로 입원한다.
1889-1990
스스로 입원한 생레미의 정신병원에서 고흐는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기 시작한다. 하지만 정신병과 싸우는 중에도 그는 많은 작품들을 그려냈고 이 시기 두 점의 작품을 파는데 하나는 런던의 아트딜러의 초상화, 그리고 '붉은 포도 밭' 이다. 90년 초, 고흐는 생 레미 정신병원을 퇴원한 뒤 남동생과 조금 더 가까이 있고자 북쪽으로 이동한다.
1890
동생 테오는 고흐를 파리 근방에 위치한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살도록 해주었다. 여기서 그는 예술가들에게 유명한 우울증 전문의 가셰 박사를 만나기도 한다. 90년 한 해 동안 고흐는 많은 작품을 그렸으나 우울과 외로움에 빠졌고 설상가상으로 가장 아끼던 동생 테오의 상황도 나빠지자 그는 심적, 경제적으로 매우 불안해진다. 이후 7월 27일. 그림을 그리러 나간 고흐는 부상을 입은 채로 돌아왔고 이틀 후 사망한다.
그의 죽음은 당시 아무런 이슈거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뒤 20세기 초 다른 화가들에 의해 명성을 얻기 시작한 이후 그는 세계에서 가장 이름 있는 예술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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